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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맨십이 걷힌 뒤에 남는 것: 구글이 설계한 10년의 역습
ChatGPT, Claude, Gemini, 그리고 Cursor와 각종 API까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주요 AI 유료 서비스를 구독해서 쓰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에 매달 수백 달러를 지출하지만,
덕분에 각 모델의 미묘한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감지한다.

최근 나의 ‘AI 사용 점유율’ 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 작업의 중심은 단연 ChatGPT였고,
Claude가 코딩 파트너로서 그 뒤를 받치는 형국이었다.
당시 Gemini는 그저 최신 기술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끔 켜보는 ‘벤치마크 테스트용’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내 워크플로우의 중심축은 완전히 이동했다.
Gemini (50%) - Claude (40%) - ChatGPT (10%)
이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심이 아니다.
2025년 1월부터 시작된 3단계의 명확한 ‘체감의 변화’ 가 있었고,
이를 복기해보니 구글이 10년간 준비해 온 거대한 그림이 보였다.
1. 승자의 공식: 수직 계열화 (Vertical Integration)
역사는 반복된다
거대한 산업을 지배한 기업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 판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파악한 후, 그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연결했다.

애플의 선택 (Apple Silicon)
애플이 본 문제: 인텔 칩으로는 내가 원하는 사용자 경험을 만들 수 없다.
전략:
- 자체 칩 설계 (M1, M2, M3)
- macOS 최적화
- 하드웨어 전체 설계
- 원래 잘하던 UI/UX까지 통합
결과:
- 인텔 칩을 쓰는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
- 칩-OS-디자인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는 경험
- 애플은 모바일과 데스크탑의 통합 경험을 칩 레벨에서 장악했다.
테슬라의 선택 (Full Stack)
테슬라가 본 문제: 기존 부품 조합으로는 전기차 산업이 성립하지 않는다.
전략:
- 카메라 중심 자율주행: 비싼 라이다 대신 카메라만으로
- 수백만 대 차량의 실시간 주행 데이터 수집 파이프라인
- 자체 AI 칩(FSD Computer) 설계
- 자체 배터리(4680 셀) 개발
- 기가프레스(Giga Press): 차체를 단일 주조로 제조 원가 혁신
- 슈퍼차저 네트워크: 충전 인프라까지 직접 운영
결과:
- 라이다 센서 1/100 비용으로 동등 이상의 자율주행
- 압도적인 제조 원가 절감
-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데이터 규모와 충전 경험
- 전기차 산업 전체를 재정의
구글의 선택 (AI Infrastructure)
구글이 본 문제: 엔비디아 GPU로는 AI 산업의 경제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전략:
- 자체 칩 설계 (TPU v1~v6, 10년)
- 자체 데이터센터 운영
- 컴파일러(XLA) 최적화
- Transformer 아키텍처 창안
- 유튜브/검색/지도 데이터 독점
결과:
- 엔비디아 의존 대비 압도적인 원가율
- API 가격 경쟁력
- AI 서비스의 사업성(BM) 확보
공통점은 명확하다.
이들은 단순히 ‘더 나은 제품’을 만든 게 아니다.
산업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소를 파악하고, 가장 밑단의 인프라부터 사용자 경험까지 직접 통제했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인 투자처럼 보이지만,
임계점을 넘는 순간 ‘복제 불가능한 해자(Moat)’ 가 된다.
2. 10년의 축적: 하드웨어를 넘어선 ‘지식의 깊이’
우리는 흔히 구글의 강점을
‘TPU(자체 칩)’와 ‘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인프라에서만 찾는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하드웨어 그 자체가 아니다.
그 하드웨어를 10년간 굴리며 쌓아온
‘최적화 지식(Optimization Knowledge)’의 깊이다.

풀스택(Full Stack)에서 나오는 ‘연결 지식’
경쟁사들은 GPU 제조사(엔비디아)와 클라우드 운영사(MS/AWS),
그리고 모델 개발사(OpenAI)가 분리되어 있다.
서로의 블랙박스를 모른 채 API로만 소통한다.
반면 구글은 모든 레이어가 열려 있다.
- 칩 설계자는 Transformer 연산의 특성을 알고 회로를 짠다
- 컴파일러 엔지니어는 칩의 물리적 특성을 알고 코드를 최적화한다
-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모델의 발열 패턴을 알고 냉각 시스템을 돌린다
이 ‘영역 연결 지식(Cross-domain Knowledge)’ 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구글의 무서움은 여기서 나온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허무는 최적화 역량.
이것이 경쟁사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내공’ 이다.
3. 체감의 3단계: 가성비, 사업성, 그리고 강력한 성능
나의 Gemini 사용 경험은
이 ‘축적의 시간’이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는 과정을 체감하는 것과 같았다.

Phase 1: 가성비의 발견 (2025.01 - Gemini 2.0 Pro)
올해 초, Gemini 2.0 Pro가 출시되었을 때
처음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어? 생각보다 쓸만한데?”
타사 모델 대비 현저히 낮은 비용으로
꽤 긴 문맥을 처리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메인 모델이라기보단,
비용을 아끼기 위한 ‘서브 옵션’ 으로서의 가치였다.
Phase 2: 비즈니스의 확신 (2025.06 - Gemini 2.5 Pro & Flash)
개발자이자 창업가로서 내게 결정적인 순간은
6월, Gemini 2.5 Pro와 Flash의 출시였다.
AI 서비스를 개발할 때 가장 큰 골칫덩이는 ‘원가율’ 이다.
토큰당 비용이 높으면 비즈니스 모델(BM)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때 구글이 보여준 퍼포먼스와 가격 정책은 충격적이었다.
“이 가격에 이 성능이면, 꽤 좋은 품질로 서비스를 론칭해도 마진이 남는다.”
단순 사용자가 아닌 공급자(Developer)의 입장에서
구글의 인프라 효율성을 뼛속 깊이 체감한 시점이다.
Phase 3: 성능의 역전 (현재 - Gemini 3.0 Pro)
그리고 지금, Gemini 3.0 Pro에 이르러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제는 원가율이나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제일 똑똑하기 때문에 쓴다.
복잡한 추론, 거대한 컨텍스트 윈도우를 통한 초장문 맥락의 이해, 미묘한 뉘앙스 파악까지.
가격을 떼고 붙어도 이기는 강력한 절대 성능을 보여준다.
1월의 ‘가성비’ 모델이,
6월의 ‘사업적 도구’를 거쳐,
11월에는 나를 위한 ‘주력 플래그십’ 으로 등극한 것이다.
4. 현재의 워크플로우 비중 (50 : 40 : 10)
현재의 나의 AI 워크플로우는
구글의 ‘빌드업’이 비로소 개인의 체감으로 전환된 결과물일 것이다.

1. Gemini (50%) - 메인 엔진
역할: 연구, 기획, 데이터 분석
이유: 가장 똑똑한데, 가장 빠르고, 가장 끈기 있다.
3.0 Pro는 내 사고의 확장을 돕는 진정한 파트너다.
2. Claude (40%) - 코딩 스페셜리스트, 일부 글쓰기
역할: Cursor 에디터의 백엔드
이유: 코딩은 여전히 ‘정확성’과 ‘엄밀함’의 영역이다.
구글이 거시적인 추론 능력에서 앞서나갔다면, Claude는 여전히 코드 블록 단위의 ‘장인 정신(Craftsmanship)’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40%의 비중도 언제까지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
코딩조차 구글이 압도적인 컴퓨팅 파워로 삼킬 것인가, 아니면 Claude가 특화된 ‘장인’의 영역을 지킬 것인가. 이것이 내년의 관전 포인트다.
3. ChatGPT (10%) - 일상의 습관
역할: 가벼운 검색, 스몰 토크
이유: 관성이다.
그리고 모바일 UI의 친근함과 익숙함 정도.
모바일 앱의 경험은 가장 잘 설계된 것 같다.
한가지 더 꼽자면 기본 말투가 묘하게 친근한 느낌이 있다.
5. 또 하나의 해자: 인재들을 끌어당기는 ‘중력’
구글의 ‘풀스택’ 전략은
단순히 돈과 성능의 문제만 해결한 게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한때 구글을 떠났던 ‘인재(Talent)’ 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중력이 되고 있다.

“모두가 비슷한 보상을 준다면, 무엇이 선택을 가르는가?”
빅테크들은 모두 최고 수준의 AI 연구자들에게
경쟁적인 보상 패키지를 제시한다.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흥미로운 패턴이 관찰된다.
노암 샤지어(Noam Shazeer)가 Character.AI에서 구글로 복귀했고,
Cursor와 같은 에이전트 코딩 IDE인 Windsurf를 만든 Codeium의 창업자들도 구글 딥마인드에 합류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회사를 빅테크에 통합하고
자신들은 다시 연구자로 돌아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컴퓨팅 장벽: 건널 수 없는 강”
AI 모델이 거대해지면서,
스타트업과 빅테크 사이에는 ‘물리적 격차’ 가 생겼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인프라에 투자하는 규모는
수백조 원 단위로 집계된다.
스타트업이 아무리 투자를 받아도,
외부 클라우드에서 GPU를 빌려 쓰는 구조로는
자체 칩(TPU)을 보유한 구글의 ‘실험 속도’ 를 따라잡기 어렵다.
연구하고 싶은 아이디어는 넘치는데,
그것을 증명할 ‘실험의 도구’ 가 부족한 것이다.
결국 ‘인프라’가 연구의 자유를 보장한다
최고 수준의 AI 아키텍트들에게
진정한 복지는 연봉만이 아니다.
내 가설을 마음껏, 그리고 즉시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컴퓨팅 자원’ 이다.
다른 기업의 엔지니어들이 GPU 할당을 걱정하며 실험 규모를 조절할 때,
구글의 엔지니어들은 대규모 TPU 클러스터를 활용해 실험을 진행한다.
내 모델에 맞춰 칩 설계에 의견을 내고,
컴파일러(XLA)를 수정해 최적화할 수 있는 환경.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 없이
밑바닥부터 만질 수 있는 이 자유는
엔지니어에게 ‘가장 매력적인 놀이터’ 다.
이것은 낭만적인 귀환이 아니다.
자신의 연구를 완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 이다.
구글이 10년간 구축한 이 인프라 격차가,
이제는 돈으로도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연구의 자유’ 를 제공하며
인재를 붙잡는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
6. 마케팅과 기술의 관계: 오해를 바로잡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럼 마케팅은 의미 없다는 건가?”
절대 아니다.
이 글이 마케팅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은 혁신을 세상에 전달하는 필수적인 매개체다.

마케팅의 본질적 가치
마케팅 없이는 혁신이 세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사람들이 모르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설득하는 것.
이것은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능력이다.
OpenAI가 ChatGPT로 보여준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AI를 대중에게 ‘체험 가능한 현실’로 만들었다.
“AI가 뭔지 모르겠어”라고 하던 사람들에게
“한번 써봐”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든 것.
이것은 마케팅의 승리가 맞다.
그리고 그 가치는 절대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하지만, 기술 산업에서는 순서가 중요하다
문제는 ‘무엇이 먼저 와야 하는가’ 다.
기술 산업에서 마케팅은 기술 위에 올라가야 한다.
그 반대는 결국 기만(Deception)이 된다.
화려한 쇼맨십으로 시장의 기대를 끌어올렸는데,
실제 제품이 그 기대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처음에는 관심을 끌지만,
결국 신뢰를 잃고 사라진다.
반면, 깊이 있는 기술 위에 마케팅이 올라갈 때
비로소 ‘진정한 혁신’ 이 세상에 전달된다.
결론: 결국 내공이 이긴다
화려한 마케팅은 대중을 모으지만,
압도적인 기술적 내공(Engineering Depth)은 사람을 남긴다.
물론, OpenAI의 ‘쇼맨십’ 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AI의 가능성을 증명했고, 시장의 파이를 폭발적으로 키웠다(Time-to-Market).
하지만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게임의 룰은 바뀐다.
이제는 누가 더 효율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의 싸움이다.
그동안 구글은 무대 뒤에서
묵묵히 팔기위한 칩이 아닌 순전히 내수로 사용할 칩을 설계하고, 컴파일러를 깎고, 데이터센터를 연결했다.
비웃음을 사면서도 자신들의 ‘풀스택 공식’ 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2025년 11월.
가성비(2.0)와 사업성(2.5)을 넘어
‘Gemini 3.0 Pro’ 가 그 결과를 완성형으로서 증명하고 있다.
AI 서비스에 월 수백 달러를 지출하는 헤비 유저로서 내가 보는 것은 이것이다.
경쟁의 프레임에 갇혀 어떤 면에서 우위를 점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판 자체를 새로 깔고 바닥을 다지는 것.
이것이 기술 산업에서의 진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차별화가 될 수 없다.
복제 가능한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라,
물리적 시간과 실제적 역량이 응축된 결과물.
경쟁력이란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내실에서부터 확보되는 것이다.